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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책

거미 여인의 키스-마누엘 푸익

(※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동성애자와 정치사상범이 감옥에서 같은 감방을 쓰는 이야기. 


  모든 묘사, 서술은 대화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미성년자보호법 위반으로 들어온 동성애자 몰리나와 정치 사상법 발렌틴은 같은 감방을 쓴다. 몰리나는 육체는 남자이지만 마음만은 여자인 동성애자이다. 발렌틴은 감옥 안에서도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고, 모든것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남자다. 둘의 대화는 주로 잠들기 전, 몰리나가 티비에서 봤던 이류 영화들을 발렌틴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키스를 받으면 표범으로 변하는 여인, 서로 이념이 다른 남녀의 사랑 이야기, 좀비와 마법사가 나오는 이야기, 어느 이상적인 신문 기자와 새장에 갖혀 사는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 이야기... 몰리나는 자신이 봤던 영화를 조금씩 각색하며 자신의 생각을 반영시켜 발렌틴에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그를 흔들기도, 유혹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공포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몰리나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첫 영화이야기를 할 때는 삐걱이는 톱니바퀴같던 둘의 관계가 이야기가 하나하나 꺼내어질 때 마다 점점 가까워 졌다. 그리고 결국엔 육체적인 관계에까지 이른다. 스트레잇이었을 발렌틴에게는 정말 큰 변화였을거다. 한때나마 아무런 외부의 압력 없이 사랑을 했지만 이 책은 마냥 밝은 러브스토리는 아니다. 둘의 마음에 변화가 왔더라도 결국에 몰리나는 동성애자였고 발렌틴은 정치사상범이었다. 스스로를 함부로 대해지는걸 좋아하던 몰리나와 받는 법을 모르던 구두쇠 발렌틴의 끝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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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은, 발렌틴은 정말로 몰리나를 사랑했을까? 몰리나가 가석방 되고 난 후 그가 고문을 받고 병동에 누워있을 때 꿈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여인은 그의 첫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상상한 몰리나의 여성화였을까? 몰리나에게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며 그의 동지들에게 연락을 부탁하던 발렌틴을 보고, 그리고 결국 몰리나가 그의 부탁으로 죽음에 덮혀 사라졌을 때, 나는 발렌틴이 너무나 미워 그가 정말로 몰리나를 사랑하긴 했을까하는 고민도 했다. 물론 사람이 성적 취향을 넓히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감옥 안이라는 암울한 상황과 정신적/육체적 압박으로 지칠대로 지친 발렌틴에게 몰리나의 친절은 따듯하게 다가왔을 텐데 그저 순간의 온기에 기댔던 것이거나, 아니면 애초에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하게 하려고.... 아니 이건 아닌 것 같다. 몰리나는 9년형을 받았었고, 가석방이 되리란건 둘 다 생각도 못한 일 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나는 발렌틴이 밉다. 자신이 정치사상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떤 수단으로든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면 정부에서 의심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동지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게도 편지를 부치지 못했으면서 어째서 몰리나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한걸까? 그가 게이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그를 의심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건 아니겠지?  바보같은 발렌틴... 


 이 책의 뒷커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싸구려 멜로 드라마를 매개로 펼쳐지는 성(姓)과 억압, 사랑과 편견, 자유와 폭력에 대한 매혹적인 소설이라고. 해피엔딩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조금 찝찝한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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